기억을 걷는 시간 – 삶의 폐곡선 속 기억 과 흔적
- Hyun Lee
- 2017년 5월 12일
- 3분 분량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삶의 폐곡선 속에서 나는 다시 과거의 흔적을 찾아 갈망한다. 그 흔적의 원래 주인을 갈망하며 나는 그 흔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삶의 흔적은 주인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흔적으로 현존하다. 시간이란 무한한 직선의 양쪽의 끝과 끝, 가늠할 수도, 알아볼 수도 없는 그 점들이 안쪽으로 더욱 깊게 말려 들어가면서 그 직선은 점점 구부러지고 주름을 만든다. 그 알 수도 없는 미지의 두 점이 만들어낸 주름들, 시간이 만들어낸 공간적 우글거림, 뒤틀림이 바로 흔적이다.
‘너의 모습’, ‘너의 온기’, ‘너의 시간’, ‘너’라고 부르는 존재, 그것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잔상, 그것들은 나의 삶 속에 녹아있고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 나타난다. 이것들은 혼적과 서로 마주하고 있다. ‘너’라는 존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타자, 나의 외부에 있는 것. 하지만 우리는 ‘낯선 이의 모습’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외부와 내부의 그 경계선, 시간과 시간의 끝이 맞닿아 있는 폐곡선, 그것이 바로 흔적의 모습이다. 결국 흔적은 ‘낯선’ 형상을 통해 전해지며 완연히 느낄 수 없다.
“내일도 난 너를 보겠죠 내일도 난 너를 듣겠죠 내일도 모든 게 오늘 하루와 같겠죠”
완연히 느낄 수 없는 흔적은 ‘아직도’ 과거에 살아가면서 ‘내일’로 나아간다. 즉 흔적이란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그 사이의 현재를 이어주는 흔적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이다. 이 경계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공간에 생긴 자국, 즉 시간과 공간이 맞닿아 있는 유일한 자리, 그것이 흔적이며, ‘우리’가 서있는 자리다.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자리(흔적)에서 과거의 자리를 앞으로 올 자리로 잡아당기는 존재이다. ‘우리’는 ‘과거의 너’를 ‘지금의 나’와 동일시 시켜준다. 우리는 ‘너’와 ‘나’의 이중체이며, 외부와 내부 사이의 흔적(경계)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능 조건이다.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과연 흔적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밖’이지만 ‘안’이고 ‘겉’이지만 ‘속’ 이며, ‘연속적’이지만 ‘불연속적’이고 ‘무한’하지만 ‘유한’한‘우리’는 선험적이고 경험적인 경계와 단절의 사이에서 겹쳐져 있다. 그 ‘거울’ 속의 겹침은 궁극적으로 너와 나를 이어주고 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너와 내가 보이는 이러한 ‘이중화’ 작용은 ‘파장’을 낳고 ‘소리’가 된다. 이러한 파장은 바로 ‘주름’들이 발생시키는 작용 효과이다. 파장은 전적으로 시간적인 것이며, 흔적적인 것이다. 시간의 일그러짐이 만들어낸 그 ‘틈’들이 만들어내는 ‘차이’들과 ‘되품’이 공간으로 전이 되면서 감각기관들 사이로 스며든다. 이러한 육화의 과정은 시간이 공간에 스며드는 과정이다. 결국 흔적은 시공간의 산물이며, 이중화의 증인이다. 이러한 겹침과 접힘, 첨가와 덧댐, 포갬과 거듭은 나를 현존으로 이끈다.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현존의 이중화는 나를 구성함과 동시에 제한한다. 유한성은 ‘나’를 만듬과 동시에 ‘너’를 만들고 ‘우리’로서 겹침을 만들다. 겹침이 만들어 내는 이질감, 낯섬은 결국 ‘너’를 갈망하게 만든다. 있지만 없는 이 ‘유령’ 같은 존재는 나의 외부에서 나의 내부에 있고 너라는 이름아래 나에게 찾아온다. ‘너의 기억’은 나에게 찾아와 나와 마주한다. 마주함으로서 나는 나를 확인한다. 확인의 작업은 철저한 자기검열과 동시에 나의 결핍의 증거이다. 결핍은 부족이 아니다. 나를 만들어주는 요소이자 조건이다. 이러한 결핍의 비어있음은 운동의 원천이며 나를 괴롭힘과 동시에 성장시킨다. 흔적들이 남긴 상처로 살과 살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들 사이로 굳은살이 생긴다. 이 굳은살은 더욱 견고하게, 더욱 나를 채워준다. 이 ‘미어지는 마음’은 어쩌면 나의 삶의 증표이며, 상징이다.
부정을 통해서 얻은 긍정, 어쩌면 나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정의 긍정을 통해서 나아가는 게 아닐까?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난해한 겹침들 속의 혼란은 어쩌면 나 그 자체이지 않을까? 갈망하는 존재는 비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비어있음을 인정한 ‘가득 차있음’이 아닐까? 또다시 ‘기억을 걷는 시간’동안 나, 너 그리고 우리는 삶의 폐곡선이라는 유한성들 사이에 일그러짐은 또 다른 ‘너’이자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나’라는 존재 양상을 기억을 걸으면서 한번 긍정 해본다.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너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시간 안에 살았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지금도 난 너를 느끼죠 이렇게 노랠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난 그대가 보여 내일도 난 너를 보겠죠 내일도 난 너를 듣겠죠 내일도 모든 게 오늘 하루와 같겠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어떡하죠 이젠 어떡하죠 이젠 그대는 지웠을 텐데 어떡하죠 이젠 우린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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