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근대성
- Hyun Lee
- 2017년 1월 13일
- 2분 분량
'우리’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철학적 질문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를 규정할 때, ‘동양’(the Orient, the East)이라는 말 또한 서구인들이 설정한 관념체계이다, 포스트모던즘이 도래하면서 기존의 폭력적인 근대성에 대한 반성적 태도와 함께 다원, 거대담론의 부정, 해제 등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그들이 이름 지어준 ‘동양’이라는 곳에 사는 ‘우리’도 주체성을 찾은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근대성의 담론은 사실상 성공했으며 현대적 국가 중 서구화되지 않은 국가는 사실상 없다.
주체(subject), 합리성(rationality), 관념(notion), 담론(discourse) 등등의 학문적 용어뿐만 아니라 일상어 속에서도 서구의 언어를 번역한 언어,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 메이지 시대 때의 학자들이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한자로 번역한 또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상 우리의 국가시스템, 사회, 법률, 의학, 정치, 과학이 모든 것이 일본을 건너서 받아들인 근대성이다. 내가 아무리 근대성에 대해서 부정하는 논문을 쓰거나 논쟁을 벌여도 이 행위들 자체가 근대성의 산물이다. 모든 인간이 인종적으로 평등한 시대가 도래한 이유는 사실 ‘근대성’이라는 담론이 이미 모든 사람의 뇌 속에 이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세르방의 저서중“사슬은 우리가 그 구조를 모르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단단히 조여드는 것이다. 절망감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쇠와 강철로 된 쇠사슬은 부식되고 말지만, 습관으로 굳어진 관념의 연합은 더욱더 강하게 조여드는 사슬과 같다. 가장 튼튼한 제국의 흔들리지 않는 기반은 인간의 부드러운 두뇌 신경조직 위에 세워진 것이다.” (1676년, 『범죄 사법 행정에 관한 논설』)
서구의 제국주의는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이루지 못한 꿈을 정신의 세계에서 이룩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완전히 서구인의 사고의 방식이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서구인의 체계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특히 정치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도 우리의 핏줄 속에서 잠재된 생각과 주입되어 교육받은 또 다른 생각의 충돌일 수 있다. 근대성이라는 것을 서구의 입장에서 서구의 방법론으로 해석되었다. 사회주의, 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유, 평등이라는 사상을 이제는 우리의 담론과 체계로 우리의 체질의 맞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양에서는 자생적인 반성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 반성마저도 받아들인다. 푸코의 저항이론을 배울 때 우리가 진짜로 저항해야 하는 것은 바로 푸코의 저항이론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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