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Plato)의 모방론
- Hyun Lee
- 2016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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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처음 시작은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15세기 이전 르네상스 이전의 예술품이라고 불리는 그림,조각 등은 감상으로써의 목적이 아닌 종교적 섬김(serve) 우상(idol)으로 시작한다. 체계화된 종교이전 종교적 역할을 했으며 애니미즘(animism)적 특성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등장으로 “우상을 섬기지 마라!”는 십계명에 따라 예배의 대상(icon)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예술의 본질은 ‘예술이 아닌 무언가를 전해 주는 것’ 형식 외적인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종의 중간재 역할을 한다. 대상과는 필연적으로 연결되며 외적인 것을 모방하여 의미를 전달한다. 여기서 ‘모방’은 원본(이데아)을 능가할 수 없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가는 모방꾼, 아류로 전락 한다.
전자에서 알 수 있둣이 기본적으로 예술가를 모방자이며 예술은 열등한 것으로 정의한다.플라톤의 국가[Republic]10권에서 침대의 비유가 나온다.신이 만든 침대와 목수가 만든 침대, 화가가 그린 침대가 있을때 화가의 침대는 참된 실재(신의 침대,이데아적 존재)와 비교하면 3단계에 속하며 플라톤의 모방은 협소한 의미의 모방으로서 외관의 모방, 횽내내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예술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은 공예와 기술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낭만주의적 창조성(예술로서의 예술)이 부재하고 자연주의 예술이 반영되었으나 ‘아름다움’이라는 기능성을 가지고 있을 뿐 궁극적인 심미적 경험을 반영하진 못했다.
이러한 예술은 지금의 우리가 바라보는 예술의 정의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데아로서의 미(美)를 전달하는 초보적 수단인 점에서 감각, 감성, 쾌락 추구보단 정신, 이성, 진리 추구를 지향하는 서양 미술에 많은 영향를 주었다. 또한 예술이 비천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일상(공예)과 가까이 있어 현대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주었다.

15세기 르네상스에서 모방은 수학적 비례(원근법,기하학,황금비)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론적 학(學)의 경지에 도달하고 산업화 시기에 접어들면서 사진술과 인쇄술의 발달로 창작과 개성의 표현, 순수예술개념이 생기면서 미적 경험이 일상과 분리되며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관념이 성립되었다. 모방은 모든 예술의 근원이며 시작이다.이러한 모방은 미술사에 있어서 작지만 큰 출발점이며 그 정신을 발전시켜 아리스토텔래스의 모방론으로 발전된다.